지나치거나 모자라지도 아니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한,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나 정도가 중용(中庸)이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치우치지 않는 것을 중(中)이라 하고, 바꾸지 않는 것을 용(庸)이라 하였다.
사람다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세상이 되기 위해서 중용이 매우 중요하다.
내 편만 알고 내 편이 아닌 사람은 사람으로도 보지 않는 그러한 세상에서는 중용을 보기 힘들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아닌 것도 아니라고 하지 못하고 자신의 양심을 팔면서 옳다고 박수를 보내는 그런 추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는 불의와 타협하고 사리 사욕에 편승하여 살았던 사람들의 비참한 말로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냉엄한 역사를 보면서도 권력에 눈이 멀어 중심을 잃고, 양심을 헌 옷 버리듯 버리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보면 악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도 사회적 약자도 아닌, 지도층에 있는 사람, 남 보다 더 배웠다고 하는 사람, 가질 만큼 가진 사람일수록 더 심하니 세상이 잘 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지도층에 있는 사람이 솔선수범하여 중심을 잡아주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그 반대된 행동을 보이니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과연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
요즘 정치권을 보면 한편의 막장 드라마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국민 혈세를 받기가 부끄럽지도 않은 모양이다.
임기 내내 국민을 위한 일은 뒷전이고 상대와 헐뜯고 싸우는 것을 최대 공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무슨 정치가 있을 수 있나?
공천을 준 물건이나, 받은 물건이나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정말 물건이다.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중심을 잘 잡아야 죽을 때 후회하지 않는다.
대통령, 국회의원, 시장, 군수…. 도대체 그놈의 권력이 무엇이길래 그렇게 목을 매는가?
정말 국민을 위해서 일하고 싶어서인가?
자신의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한 것은 아닌가?
권력의 정점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중심을 잘 잡아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하니 나라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도대체 중용의 미덕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아무 죄 없는, 가진 것 없는 마음 착한 국민이 나라 걱정을 하니 이거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 아닌가?
대한민국 위상이 이렇게 높아진 것도 그 잘난 사람들이 정치를 잘 했다기보다는 똑똑한 국민이 중심을 잘 잡은 덕이라 생각한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편향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
권력에 눈이 멀어서는 안 된다.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중심이 중요하다.
중심이 흐트러지면 모든 것이 다 흐트러지게 되어 있다.
원을 그리는 데 중심이 두 개일 수 없다.
중심이 두 개라면 올바른 원을 그릴 수 없다.
그래서 중심이 하나다.
중심이 자꾸 흔들리면 그리는 원도 흔들린다.
권력을 취하더라도 상대와 정당하게 대결하여 이겨야 한다.
무력으로 쟁취한 정권은 무너졌거나 물러나도 비참하게 물러났다.
순간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영원을 포기할 것인가?
인생 별거 아니다.
순간이다.
순간을 위해 영원을 버리지 말라.
윗사람의 눈에 드는 것도 좋지만 비굴하지 말라.
비굴하게 붙어사는 것,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말을 하지 않을 뿐이다.
논어에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라는 뜻으로 ‘중용’이라는 덕성을 규정하기 위한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중용에 관한 황희 정승 이야기가 있다.
황희 정승이 데리고 있는 두 여종이 싸웠다.
한 여종이 고하자, “네 말이 옳다”고 하였다.
다른 여종이 고하자, “네 말이 옳다”고 하였다.
이를 본 부인이 묻자, “부인 말도 옳소”라고 하였다.
어떻게 보면 중용이 무엇인지 잘 나타내주는 이야기다.
섣불리 판단하여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주 잘못이다.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것을 황희 정승이라고 판단을 옳게 내릴 수 있을까?
생각이 깊은 사람은 어느 한쪽을 두둔하지 않는다.
공자가 말하기를 천하의 국가도 고루 다스릴 수 있고, 작록도 사양할 수 있으며, 시퍼런 칼날도 밟을 수 있지만 증용은 능히 할 수 없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은 지혜롭다고 말하지만, 그물이나 덫 혹은 함정 속으로 몰아넣어도 그것을 피할 줄 모르고, 중용은 한 달도 지키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중용이란 말로는 쉬워도 실천 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중용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항상 중용의 길을 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한 쪽으로 기울어지면 다른 한쪽으로부터 공격당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고 그러한 행동이 빌미가 되어 큰일을 그르칠 수 있다.
강자에게 올바른 말로 당당하게 맞서는 사람, 약자에게 한없이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진정으로 중용을 실천하는 사람이 아닐까?
이은학
전)대전광역시교육청 교육복지팀장, 학교혁신팀장
전)대전중원초, 대전송촌초등학교 교장
전)대전교육정보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