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
하늘꽃 윤외기
살다 보면 누구나 밀어내도 밀려나지 않고, 풀리지 않는 매듭 하나쯤 가슴 깊숙한 곳에 품고 살아가게 된다. 집 안 서랍을 정리하다 보면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실타래나 끈 뭉치가 불쑥 손에 잡히듯, 삶의 어느 한편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매듭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손톱을 세워 파고들어도, 바늘 끝으로 찔러 보아도 좀처럼 빈틈을 내어주지 않는 단단한 옹이 같은 것이다.
우리는 매듭을 풀기보다 외면한 채, 점점 잊혀가는 시간 속으로 밀어 넣고 살아왔고, 그 매듭은 어느 날 문득, 노래처럼 되살아나 나를 붙잡아버린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 아닌, 다만 삶의 속도가 느려지고, 욕망이 예전만 못해진 어느 오후, 무심히 창밖을 바라보다가 오래전 묶어 두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풀리지 않은 말들, 놓지 못한 미련, 미처 사과하지 못한 시간이 실처럼 엉켜 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매듭을 만들면서 살아가고, 인연의 매듭을 맺고, 욕망의 매듭을 단단히 조이며, 때로는 차마 끊어내지 못한 미련의 매듭을 가슴에 묶은 채 살아간다. 처음에는 그것이 삶을 단단히 붙잡아 주는 끈이라 믿었으나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면, 그 매듭은 나를 지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옭아맨 족쇄였음을 깨닫게 되고, 돌이켜보면 그 매듭은 내가 의도적으로 묶은 것 아니지만, 강물은 흐르는 세월과 나의 집착이 공모하여 서서히 조여 온 결과였다.
세월은 늘 같은 속도로 흘러가지만, 우리는 그 흐름을 붙잡으려 애썼고 멈추지 않는 시간을 원망하며, 지금 가진 것만은 오래도록 내 곁에 머물러 주기를 바란다. 청춘의 시절, 우리는 그것을 열정이라 불렀고, 남들보다 더 앞서가야 하고, 더 많이 가져야 했고,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 속에서 자신의 목에 매듭을 하나씩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더 빨리 달릴수록 숨은 가빠졌고, 더 꽉 움켜쥘수록 손은 굳어가고 그럼에도 우리는 멈추지 않았고, 멈추는 순간 모든 것을 다 잃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강물은 한 번도 흐름을 거스른 적이 없건만, 인간의 마음은 늘 그 반대편에 서 있고, 시간이 잠시 멈추어 주기를 바라고, 내가 쌓아 올린 성취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며,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붙들고 조이려 한다. 욕망과 집착이 강해질수록 삶의 매듭은 더욱 팽팽해지고, 그 팽팽함은 결국 고통으로 되돌아온다. 꼬인 매듭을 풀고 싶다는 조급함에 몸부림칠수록 줄은 살을 파고들고, 상처는 깊어만 간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내 의지와 노력만 있다면 어떤 매듭이든 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어떤 매듭은 내 힘으로는 풀 수 없는 영역에 속해 있다는 것을,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중년에 접어들어 어느 날 거울 앞에 섰을 때, 낯선 얼굴이 나를 바라보고 있으면, 맑았던 눈동자는 탁해졌고, 넉넉하다고 믿었던 마음은 작은 손해에도 쉽게 흔들렸다. 타인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사소한 일에도 오래 마음을 쓰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그 변화가 서글프게 다가왔다.
풀지 못한 매듭을 가슴에 끌어안은 채 버텨 온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나 있고, 경제적인 궁핍보다 더 두려운 것은 마음의 궁핍이라는 말을 그제야 실감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생긴 오해의 매듭, 부모님께 다하지 못한 효도의 매듭,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끝내 용서하지 못한 자책의 매듭이 한데 얽혀 있었고, 그 매듭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삶의 방향을 가로막는 거대한 절벽처럼 느꼈다. 그 절벽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멈추었고, 매듭은 힘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힘을 뺄 때 틈이 생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잡아당길수록 더 조여 오던 끈이, 손을 놓자, 서서히 숨쉬기 시작하고,
매듭을 대하는 새로운 시선의 핵심은 자기 성찰에 있었다. 꼬였다고 해서 실을 잘라내 버릴 수 없고, 그것 또한 내 삶의 일부이며, 내가 지나온 시간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강물이 흘러가듯 시간은 쉼 없이 흐르고, 그 흐름 속에서 아무리 단단했던 매듭도 조금씩 느슨해져도 나는 더 이상 억지로 매듭을 풀려 하지 않고, 대신 가만히 바라본다. 왜 이 매듭을 묶었는지, 이 매듭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집착의 손아귀에서 힘을 빼는 순간, 도무지 보이지 않던 실마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그것은 용서일 수도 있고, 체념일 수도 있으며, 혹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조용한 긍정일 수도 있다. 이제는 매듭을 원망하지 않아도, 매듭이 있다는 것은 내가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증거이며, 그 매듭을 풀기 위해 고민하고 아파했던 시간 또한 내 삶이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도 풀리지 않은 매듭 하나가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시간의 강물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고, 언젠가는 그 매듭 또한 흐름 속에서 제 자리를 찾을 것이다.
삶은 매듭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매듭과 함께 공유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꼬여 가는 매듭 앞에서 절망하기보다, 그 속에 새겨진 삶의 무늬를 읽어내고 싶고, 잊힌 시간 속에 묻어 두었던 마음을 꺼내어 흐르는 강물에 씻어 보내며, 다시 한번 나 자신에게 숨 쉴 틈을 내준다. 오늘도 내 마음 한구석의 매듭을 조심스레 매만지면서, 언젠가 세월이 이 매듭을 부드러운 순으로 바꾸어 놓을 날을 기다리며, 욕망 대신 평온을, 집착 대신 자유를 선택하려 한다. 그것이야말로 삶의 매듭을 푸는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정직한 방법임을 이제는 알았다.
<프로필> 시인,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문예마을 부대표, 문학춘하추동 이사, 제47회 강원경제신문 코벤트가든문학상 대상, 제5회 시담문학 대상, 제5회 스위트 홈 오뚜기 푸드 에세이 공모전 사랑상, 제28회 김삿갓문화제 전국 일반공모전 장려상, 제30회 경기 노동문화예술제 동상, 제15회 뿌리와 효문화 축제 공모전 은상, 2025년 전국 민촌백일장 장려상, 대전 문예마을 작가대상, 쉴만한물가 작가대상, 지상작전사령관 표창, 동원전력사령관 외 다수
<시집>『너의 이름은 사브라』외 3권 <공저>『초록물결 5~14호』외 다수



